제도 진보해도 현장은 제자리걸음
처벌·보호체계, 여전히 많은 과제
기관 간 정보단절 해소 방안 필요
실무자 전문성·회복 지원도 절실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 강화해야
25년 전, 우리 사회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함께 답했습니다. “모두의 아이, 모두의 책임”이라고. 그 대답은 곧 약속이 되었고, 2000년 ‘아동복지법’의 전면 개정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2020년 10월 아동학대 조사공공화 시행, 2021년 징계권 폐지 등 25년 동안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바꿔왔습니다.
우리는 아동학대를 더 이상 가정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고 누군가는 책임지고,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제도 속에 새겨왔습니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지방정부는 아동보호의 책임 주체로 나섰습니다. 아동학대 전담 인력이 배치되고, 아동학대 대응 체계가 구축되며, 다양한 보호 서비스가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현장에서 아이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아이의 신호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이들은 아동학대 대응 업무의 최전선에서 두려움과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를 가장 먼저 마주하며 고군분투하는 실무자들입니다. 아동학대 대응인력이 활동하는 공간은 단순한 ‘현장’이 아닙니다. 아동 보호의 최전선이자, 아이와 사회가 다시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그들의 손길은 때로 보호의 시작이 되고 회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묻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제도가 진보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때가 많습니다. 보건복지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신고건수 1만7천782건에서 2024년 5만242건으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지표들은 아동학대 ‘발견’의 폭이 넓어졌음을 보여주지만 신고 이후 학대로 최종 판단된 건수는 2014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낮아졌으며, 처벌 및 피해 보호로 이어지는 체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나타냅니다.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기관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한계가 있고 실무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사례는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경기도거점아동보호전문기관은 바로 이 틈을 메우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경기도 내 31개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과 26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아동보호전담요원 등 변화하는 정책들에 대응하여 아동이 건강하고 행복한 경기도를 만들기 위한 역할이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아이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을 지지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실무자를 위한 교육과 슈퍼비전, 고난도 사례 컨설팅, 그리고 지역 내 다양한 자원을 잇는 협력의 플랫폼이 되어왔습니다. 보호의 시작부터 아이가 안전하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관 간의 정보 단절을 해소하고 통합적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하나의 팀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둘째, 실무자의 전문성과 회복을 위한 지원 체계가 절실합니다. 전문성은 반복된 고통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돌봄을 돌보는 시스템, 쉼과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아동학대가 발생하기 전에 막아낼 수 있는 ‘예방 중심의 보호체계’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학대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위험 신호를 놓쳤을 때 생기는 비극입니다.
이제 발견과 대응을 넘어서 아이 주변의 모든 어른이 예방의 주체가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동학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입니다. 그 질문 앞에, 경기도거점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직하게 답하고자 합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정책에 담고, 실천의 손길이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다리이자 연결의 고리가 되겠습니다.
/이보은 경기도거점아동보호전문기관 역량강화팀장
[기고문 게재]
▶일시: 2025. 9. 24.
▶제목: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 우린 어디쯤 와 있을까?
▶매체: 경인일보(https://www.kyeongin.com/article/1752200)